아까 집에 들어가기 전에 경비실 위로 까치가 앉았다 날아갔다.

집에서 저녁을 먹고 문을 나서는데 앞집 이웃 아주머니를 오랜만에 뵈었다.

한 손엔 쓰레기봉투를 들고 계셨다.

인사하고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길 기다리며 아주머니께선 이제 한 달만 있으면 방학이겠다고 하셨다.

네라고 대답하고

먹고 대학생 얘기를 하셔서 웃었다.

아주머니께선 요양병원에 가셔서 다른 분들을 보고 대학교를 다녀야하나란 생각을 하게 됐다고.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무튼 대학을 나오셔서 요양 병원 쪽 일을 하신단 이야기 같았다. 미래도 밝은 편이라고.

아들들에게 말하면 엄마 그런 거 왜 하냐고 그럴 것이고 남편 분도 분명 싫어하실 거라 했다.

근데 동료분들은 괜찮을 것 같단 식으로 말씀하셨다고.

나는 좋을 것 같단 식으로 말했나? 속마음으로만 했나 이것도 기억이 잘 안난다.

한 가지 기억나는 건 나는 이 이야기의 흐름이 내가 대학교를 늦게 들어갔으니 기죽을 것 없다, 힘내란 이야기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힘을 받게 된다.

영어가 어려워 영어공부를 요즘 하고 계신다고 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주머니 차 앞에서, 이야기는 계속 됐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아주머니 차 앞에 쓰레기 봉투가 놓인 채.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어떤 표정을 짓고 있어야 좋을 지도 모른 채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아주머니께선 남편분 정년도 12년 정도 남았고 남은 인생에서 봤을 때 지금 반 정도 왔는데 이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보셔서 

나는 " 하고싶으시면 하셨으면 좋겠어요." 라고 답했고

아주머니는 이런 질문 하는 게 웃기죠? 하셔서 개미만한 목소리로 아니요 멋있으..ㅅ..ㅔ ㅇ..ㅕㅛ 라고 했지만

아마 못 들으신 것 같았다.

마지막에 화이팅이라고 해드렸어야 했나.

아직 나는 (어려서?) 잘 모를 거라 하셨지만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어찌저찌 대화가 끝나고 영어 공부를 몰래 하고 계신단 아주머니 말씀이 맴돌았다.

마지막엔 이 이야기 아직 가족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라고 하셨다.

앞집 사는 오랜만에 만난 먹고 대학생에게 이야기 하실만큼 요즘 온통 그 생각 뿐이신가보다.

나는 이 대화에서 알 수 없는 힘을 받았고

내리는 보슬비를 맞으며 자전거 타고 학교로 올라가면서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대부분 멋있다!류의 감정들

우리 이웃에 멋진 아주머니가 살고 계신다.

적절한 상담자는 아니었겠지만

덕분에 힘이 나고 마음을 다잡게 되는 저녁이었습니다.

모쪼록 아주머니께서 행복한 선택 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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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90's ki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