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에서 온 이메일’-장이지(1976~ )



안녕, 여기는 잊혀진 별 명왕성이야.


여기 하늘엔 네가 어릴 때 바닷가에서 주웠던


소라 껍데기가 떠 있어.


거기선 네가 좋아하는 슬픈 노래가


먹치마처럼 밤 푸른빛으로 너울대.


그리고 여기 하늘에선 누군가의 목소리가


날마다 너를 찾아와 안부를 물어.


있잖아, 잘 있어?


너를 기다린다고, 네가 그립다고,


누군가는 너를 다정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네가 매정하다고 해.


날마다 하늘 해안 저편엔 콜라병에 담긴


너를 향한 음성 메일들이 밀려와.


여기 하늘엔 스크랩된 네 사진도 있는걸.


너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있어.


그런데 누가 넌지 모르겠어. 누가 너니?


있잖아, 잘 있어?


네가 쓰다 지운 메일들이


오로라를 타고 이곳 하늘을 지나가.


누군가 열없이 너에게 고백하던 날이 지나가.


너의 사진이 지나가.


너는 파티용 동물 모자를 쓰고 눈물을 씻고 있더라.


눈밑이 검어져서는 야윈 그늘로 웃고 있더라.


네 웃음에 나는 부레를 잃은 인어처럼 숨막혀.


이제 네가 누군지 알겠어. 있잖아, 잘있어?


네가 쓰다 지운 울음 자국들이 오로라로 빛나는,


바보야, 여기는 잊혀진 별 명왕성이야.



Posted by 90's kid :